미래가 사라진 재난세대



안녕하세요. 저는 제천간디학교 고등 1학년에 재학 중이며 청소년 기후행동에서 활동 중인 박선영입니다. 여러분들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떠올리시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저는 두려움, 무서움, 불안함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요.

제가 다니는 제천간디학교는 대안학교이다 보니 생태적인 활동들을 많이 해요. 자연농법을 위해서 생태화장실을 쓰기도 하고, 직접 농사를 짓기로 하고, 얻은 수확물로 김장을 직접 하기도 해요. 또 학생회 부서로 환경부가 자리하고 있어, 학생들이 친환경 제품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만으로 제가 지구를 위해 엄청 노력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우리의 노력들이 석탄발전소 하나만 없어지면 해결되는 작은 실천이었더라고요. 우리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온실가스 배출로 기후위기는 심각해지고 있고, 그것을 아는 순간 저의 두려움도 엄청난 속도로 커졌어요.

제가 기후위기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된 것은 지난 겨울부터입니다. 제가 사는 제천시 덕산면은 어른들이 우스갯소리로 6개월 동안 겨울이라 할 만큼 추운 곳인데요. 엄청 추울 때는 -20도를 넘나들었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겨울 방학도 일찍 했고 기숙사에서 학교 내려가는 길이 얼어서 앉아서 내려가야 하는 날도 많았어요.

아래 그래프는 2015년도부터 2020년까지 1월, 2월의 온도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입니다, 한눈에 봐도 이번 겨울은 다른 겨울보다 따뜻하게 지나갔다는 게 느껴지시죠? 이곳도 2년째 눈이 거의 안 오고 있습니다. 저는 겨울이면 전교생이 운동장으로 나가 눈싸움을 했던 소중한 추억들이 있는데 앞으로도 그런 즐거운 시간을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번 여름은 모두에게 잊지 못할 여름이 되어버린 것 같아요. 49일간의 장마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습니다. 충북의 장마 평균 강수량은 376.8mm인데 이번 장마 평균은 886mm라고 합니다. 2배가 넘는 역대급 강수량이죠. 전국에서 큰 피해를 보았지만, 충북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 많은 수해를 입었어요. 얼마 전 <한겨레21> 측과 함께 기사를 쓰게 되어서 충주 관 내 산사태가 일어난 마을로 공동취재를 다녀왔습니다. 마을 안은 아수라장이었어요. 아스팔트들은 깨져있었고, 전봇대들은 부러져있었어요.

토사물에 휩쓸려 집끼리 박혀있기도 했어요. 산사태가 일어났던 세고개마을은 우리 마을과 너무나 비슷했던 마을이예요. 마치 우리 마을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아 두려움으로 몸이 떨렸습니다. 피해는 주변까지 이어졌어요. 복숭아 농장을 하고 계시는 아저씨는 계속되는 장마에 복숭아가 썩어서 팔 수 없게 되자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어요. 저는 정말 속상했어요. 장마로 농작물들을 팔 수 없게 되는 장면을 보면서 저는 기후위기가 심각해졌을 때 식량난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습니다.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우리 청소년 기후행동은 죽지 않고 싶어서 거리로 나왔습니다. 2020년에 펼친 활동들을 소개해드릴게요. 청소년기후행동에서 제가 처음 참여한 것이 헌법소원인데요. 청소년 19명이 청구인으로 참여해서 3월 13일에 헌법재판소에 국회와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한 일입니다. 정부의 소극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내용의 심판청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청소년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이라고 합니다. 현재 사전심사를 통과하였고 앞으로 결과만 남아있어요. 헌법소원은 계속 진행 중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다음으로 교육청에게 탈석탄금고지정 요구 캠페인을 진행했어요.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예산이 석탄 투자를 하는 은행으로 들어가게 둘 수는 없었어요. 저희의 요구에 서울시 교육청은 탈석탄 은행을 우대한다고 답변을 보내왔고, 그 뒤를 이어 다른 여러 교육청에서도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삼성물산의 베트남 석탄발전소건설 불참촉구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한국전력이 베트남 붕앙 지역의 석탄 발전소건설에 투자한다는 사업인데요. 우리가 왜 한국전력이 아닌 삼성물산에 불참 촉구를 하였냐면, 삼성은 최근 호주 청소년들의 불매 운동으로 호주 아다니 석탄 프로젝트 투자를 회수하기로 결정하였고, 계열사인 삼성전자 또한 2020년까지 미국, 중국, 유럽 내 사업장에서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전 세계 사업장에서도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삼성물산이 베트남 붕앙 석탄발전 건설에 참여한다는 것은 삼성의 경영 목표와 배치되는 행동입니다. 또 결정적으로 삼성물산이 불참하면 이 사업은 진행할 수 없어, 불참 선언 촉구 캠페인을 하였습니다.

다음으로는 9월 25일은 결석시위를 진행하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되어서 많은 아쉬움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할 기회가 생겨서 좋았습니다.

청소년기후행동을 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우리가 반대했던 한국전력의 베트남 석탄발전소 투자가 확정되었는데요. 이런 일을 마주하게 되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처럼 허무했어요. 한동안 이런 한계를 느끼면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이 생각이 아예 없어진 것은 아니에요. 근데 무력감을 느낀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겠더라고요. 결국은 누군가가 요구를 해야지 그나마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각한 게 캠페인과 행사들을 조금 더 색다르게 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었어요. 여기 계신 여러분도 앞으로 우리 청소년기후행동의 활동들을 더 관심 깊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청소년 기후행동을 참여하게 된 계기를 돌아보면 사실 정말 별다르게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무슨 단체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약간은 멋있게 보여서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아무 생각 없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생각 없이 들어가서 많은 것을 느꼈어요. 같이 일을 하고 목소리를 내려면 큰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도 하고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했어요.

친구들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요. 셰어하우스를 하자, 공정여행을 하자 등등 한참 신나서 떠들고 있는데 친구 한 명이 ‘우리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자 신기하게도 우리 모두 ‘그러게’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자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어요. 말은 안 했지만 우리는 은연중에 우리의 미래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었던 거지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우리는 너무 짧은 시간 안에 기후재난들을 많이 겪었어요. 올해만 해도 코로나에 유난히 긴 장마에 반복되는 태풍에 한해 한해가 확연하게 달라지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어요. 그냥 재난이 일상화된 거 같아요. 지금 겪는 재난들은 이미 2~30년 전에 만들어진 결과라고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러면 현재 상태에서 앞으로 2~30년 뒤는 어떨까 싶어요.

우리 청소년을 미래세대라 부르면 안됩니다. 미래가 안 보이거든요. 코로나세대, 산불세대, 홍수세대, 태풍세대, 식량위기세대, 재난세대라고 불러야죠. 어쩌면 우리는 이제 재난의 한복판에 이미 들어섰는지도 몰라요. 코로나19가 말해주듯이 앞으로 우리 일상은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들 하더군요. 지금도 너무너무 불편하고 갑갑하고 걱정스럽고 불안한데 이 정도는 시작일 뿐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맞이할 일상은 어떨지 상상도 안 돼요.

그런데도 우리는 멈추지 못하고 있어요. 모두가 기후위기를 말하고 곳곳에서 유사 이래 최악의 이상기온이 발생하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지구는 뜨거워지고 있어도 우리는 현재의 삶의 방식을 양보하지 않으려 합니다. 당장은 화석연료를 폐기할 수 없고 당장은 자동차를 멈출 수 없고 당장은 에어컨이 필요하고 당장은 온실가스 배출을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당장은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우리는 지금 코로나를 극복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앞으로 닥쳐올 더 엄청난 재앙들과 싸워나갈 각오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불편함이 싫어서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고작 한다고 하는 것이 결석시위하고 반대시위하면서 세상에 소리치고 있는 것인데요. 기후문제만큼은 모든 어른들이 나서야 한다고 봐요. 화석연료는 이제는 더 이상 안된다, 온실가스 안된다, 우리도 불편함 참을 테니 정부가 앞장서라, 이렇게 들고 일어서면 2050년 탄소중립 같은 좀 한가한 계획은 안 나오겠지요.

적어도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꿈을 꾸고, 미래를 설계하고,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어요. 우리가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지 않게 해 주세요. 모두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 부디 행동으로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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