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라는 탈성장사회



안녕하세요.저는 오늘 한국사회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탈성장’이라는 비인기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나왔습니다. 이후 연구소의 하승우라고 합니다.

제가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인기 없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저한테도 인식을 일깨워 준 사건이 있었는데, 바로 낙동강 페놀 유출사건입니다. 1991년도 3월에 두산전자가 천만인이 쓰는 식수인 낙동강에 폐놀이 라고 하는 발암 물질을 300리터도 아니고 300톤을 배출했습니다. 발암물질이 배출된 사실이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기업은 우리는 몰랐다고 발뺌하고 정부는 괜찮다고 하면서 설득에 나섰습니다.

저는 이때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될지 모르겠다 생각하던 참에 마침 그해 10월에 녹색평론이라고 하는 잡지가 만들어졌고, 거기서 저는 틸성장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처음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작년이었죠. ‘삼진그룹토익반’이라고하는 영화를 보면서 저는 다시 폐놀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영화의 배경은 1995년인데요. 영화를 보다보면 낙동강페놀사건이 있었던 1991년과 지금 30년이 지난 지금을 비교해 보면 한국 사회가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의문이 듭니다. 사람들은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는 걸 정말 몸으로 느끼고 있을까요?

사람들이 좀더 위기로 느꼈을 상황은 아마도 국가부도의 날이라고 하는 1997년이었습니다. ‘정말 위기구나’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이때 인식했죠. 하지만 국가부도 사태 때 모두가 다 같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누군가는 그 위기를 이용해서 엄청난 돈을 벌었고 정부는 그 위기를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탄압하는 법률 들을 통과시키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정부가 어떤 이야기를 했냐면 ‘1996년에 한국은 OECD에 가입하면서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 선진국이 무슨 경제위기냐?’라며 사람들을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정부가 외환위기를 선포하면서 굉장히 많은 서민들이 피해를 보았죠. 사실 저는 지금도 이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기후위기는 없다고, 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고 우린 충실히 필요한 조치들을 이미 이행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IMF 사태와 비슷하죠. 우리는 똑같이 위기라고 부르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이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한테는 이게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방법이 되기도 할테고요.

또 우리가 위기를 겪었던 적이 있죠. 2007년 미국에서 모기지론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 세계적인 경제 위기가 옵니다. 한국도 2007~2008년 사이 성장률이 뚝 떨어지죠. 작년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의해서도 전 세계 성장률이 0%가 아닌 영점 밑으로 쭉 떨어지는 상황에 빠졌죠.

예전에는 경제가 직선으로 쭉 성장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경제는 그렇게 성장을 하는 법이 없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데, 지금은 마이너스까지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뭔가 대비를 해야 될 텐데요. 한국사회는 대비를 하고 있을까요?

저는 나 혼자라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2013년에 가족들과 충청북도로 이주를 했습니다. 수도권은 왠지 위험해 이러면서요. 이주를 해서 뭔가 대안을 도모해보려고 했는데 2018년부터 갑자기 지방소멸론이라는 이야기가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에는 수도권 인구가 처음으로 전체인구의 절반을 넘어서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수도권으로 오는 이유는 단순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일자리, 문화, 그리고 이곳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기반이 있죠. 반대로 비수도권 지역에는 일자리도 없고 병원도 없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기본적인 바탕 자체가 붕괴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방 소멸론에 대한 이야기가 굉장히 불편합니다. 비유를 들자면, 공터를 보고 사람들이 저기 다 건물을 지어야 되겠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 공터는 빈 땅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있는 땅이거든요. 지방 소멸론도 비슷하게 이미 아직 인구의 절반이 살고 있는데 지방을 두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너희는 다 소멸할거야. 근데 거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대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이 나을까 비수도권이 나을까? 고민할 때 저는 기후위기를 생각한다면 비수도권이 조금 더 평등하고 자급할 수 있는 기반이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책들은 굉장히 많이 나와있죠. 이런 책들이 나오게 된 것은 지금 이대 가면 굉장히 위험하다고 하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쓴 《탈성장 좀 아는 10대》라는 책을 비롯해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생각》, 《디그로쓰》, 《적을수록 풍요롭다》, 《지속불가능한 자본주의》 같은 책들이 올해도 계속 나왔습니다. 이런 책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탈성장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해서도 있지만 제가 볼때는 위기가 더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성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조금씩 회의적인 기운들이 퍼지고 있는 거죠. 여러 책들이 있지만 여기서 공통되게 주장하는 메시지는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경제 성장과 불평등, 생태계 파괴는 분리될 수 없는 사안이고 한덩어리다. 그러니까 생태계는 지키면서 경제성장을 할래요. 이런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일관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떻게 가고 있을까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를 꼽으면 나오는 것은 첫번째가 일자리, 두번째가 고령화입니다. 분명 심각한 문제이긴 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후위기 상황에서 우리는 이 문제들이 마치 기후위기와 무관한 것처럼 논의하고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성장과 불평등, 생태계 파괴는 한덩어리인데도 말입니다.

이러한 문제의 연결성을 무시한 채, 한국도 기후위기에 대응해야 한다고 계속 압박을 받으니까 만든 법이 「기후위기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녹색성장 기본법」입니다. 짬짜면 같은 느낌입니다. 두 가지가 함께 담길 수가 없는데 한국은 한 덩어리를 그냥 배달 서비스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이렇게 해서 정말 기후위기 대응이 가능할까요?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정말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때인데, 여전히 우리는 일자리 중심의 논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제가 볼때는 사회운동도 여전히 일자리 중심의 논의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가령 민주노총 같은 곳도 지금 정의로운 전환을 전면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첫 번째 구호는 일자리 보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활을 책임져야 된다는 하는 말은 맞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국민생활에 일자리가 꼭 핵심일까요? 앞서 보건노조에서 말씀해주신 전염병 상황, 또 홈리스 분들의 증언들을 들어보았을 때, 지금은 굉장히 다양한 대응책들이 필요한 때입니다. 너무 한 가지 원칙으로만 논의가 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고민이 듭니다.

그러면 탈성장 담론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흔히 탈성장을 이야기하면 ‘저기는 반산업적이야’, ‘저들이 말하는 건 다 문을 닫자는거야’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적을수록 풍요롭다》라는 책을 쓴 제이슨 히켈은 탈성장을 설명하면서 ‘일자리를 없애자’ 또는 ‘모든 성장을 거부한다’는 것보다는 ‘성장시키고 싶은 산업과 급격하게 탈성장해야 되는 산업을 결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가령 한국 같은 경우 한국전력 산하의 발전소들, 포스코, 현대제철, 삼성전자, LG 화학 같은 곳들이 굉장히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기업들이 동시에 다 문을 닫아야 하는 게 아니라 이곳들이 산업전환을 할 수 있도록 재생에너지설비와 온실가스 배출저감과 관련된 산업과 일자리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전염병과 관련된 보건의료 인력도 반드시 늘어야 할 거고요. 한편 지금 지방 소멸 위기에 처한 곳의 상당수가 농촌인데요. 기후위기가 식량 위기를 초래할 것을 생각하면 농업은 지금 굉장히 많은 투자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탈성장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해롭고 의미 없는 일자리들을 사회적으로 이롭고 의미 있는 일자리로 전환시키는 전략인 것이죠. 《디그로쓰》라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같은 내용입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가자는 건데? 우리가 개인적으로 실천하면 바뀔 수 있는 건가?’ 묻는다면 탈성장의 전략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위기들을 함께 감당해 보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되묻겠죠. ‘공동체? 공동체가 어디 있는데? 요즘 이야기하는 마을공동체인가?’ 제가 볼때 공동체는 특정하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예전부터 소통하고 협력하면서 사회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탈성장도 아주 구체적인 청사진과 모델을 따라가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자 하는 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겠죠. 사실 우리가 탈성장을 너무 추상적인 것으로만 여기기 때문에 오히려 더 멀게 느끼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하나씩 같이 고민하고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갈 것인가의 문제로 보아야 합니다.

특히 《디그로쓰》라는 책에서는 이것이 바로 커먼즈, 공유지라고 얘기합니다. 같이 쓸 수 있고 나눠 쓸 수 있는 것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강조를 해요. 요즘 주4일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사실 며칠 일할거냐의 문제보다는 어떻게 적정한 임금과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확충할 것인가, 어떻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 할 것인가, 어떻게 적정한 주거를 보장 할 것인가, 그런게 저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경제성장과 불평등과 묶여있는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탈성장은 조금 더 평등한 세계로 가기 위한 경로를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혼자 쓰던 에너지를 모두가 조금씩 나누어 쓰고 고쳐 쓸 수 있다면 조금 더 평등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겠죠. 그리고 노동 시간을 줄이고 삶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그것을 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각자 알아서 의미 있게 사는게 아니라 그런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공공시설들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공공재들이 확충 되어가면서 우리가 탈성장으로 가는 거지, 그냥 나는 소박한 삶을 살겠어가 탈성장이 아니라는 거죠. 사회 자체가 그런 삶을 지지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보통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는 되게 좋은데, 그게 되겠어?’ 라고요. 그런 분들에게 제가 추천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따위 자본주의는 벌써 끝났다》는 책인데요. 이 책에서 깁슨 그레엄이라는 사람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세상은 남자들이 지배해’, ‘이 세상은 자본주의 거야’ 라는 말이 틀린 이야기는 아닌데 그렇게 보면 우리는 너무 큰 이야기에만 집중하게 되고 세상을 굉장히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실제로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생산 양식과 거래행위, 노동 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자꾸 그것을 없는 것처럼 이야기 한다는 거죠.

가령 한국에도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이 있고 그 중에는 이윤만을 추구하지 않고 인간적인 가치들을 만들어 가려는 일종의 기업형태가 등장하고 있으며,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협동조합의 역사도 사실 200년이 넘었죠.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철저하게 신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만 있었다면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모두 배제되어 위기 상황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거죠. 그런 사람들의 삶을 유지시켜 왔던 것은 어찌보면 이미 존재해왔던 이러한 다양한 삶의 양식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강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사실 우리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스스로 갉아먹는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들은 한편으로 큰 투쟁도 필요하겠죠. 하지만 한편에서는 우리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삶의 규모를 만들어가는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탈성장을 이야기할 때 어떤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시기도 합니다. ‘탈성장은 무슨 탈성장이야. 화석에너지를 그냥 다른 에너지로 바꾸고, 내연기관 자동차를 수소자동차, 전기 자동차로 바꾸면 되지. 뭐 이렇게 복잡하게 이야기를 해!’라고요. 최근에 갑자기 요소수에 전국민이 꽂혀 있는데요. 요소수 대란의 본질은 바로 이것입니다.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수입이 중단되었을 경우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죠.

그린뉴딜하면 이야기하는 태양광 패널이나 풍력 발전기, 자동차 배터리에 흔히 쓰는 ‘-튬’ 계열 금속들이 있습니다. 튬 계열의 금속들은 굉장히 희귀한 금속이고 이 금속들을 주로 생산하는 생산지가 중국입니다. 중국이 이 희귀금속들을 열심히 캐느라고 엄청난 땅과 물이 오염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린뉴딜해서 우리는 안전하고 좋은 것을 쓰더라도 결국 이러한 사회, 환경적 비용을 다른 나라와 사람들에게 이전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런 방식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탈성장은 줄이는 것입니다. 계속 늘리고 성장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줄일건가를 고민하는 게 필요합니다. 국민총행복지수와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33개의 지표를 가지고 행복을 측정합니다. 경제성장, 1인당 생산액 같은 게 물론 주요한 지표이긴 합니다만 그중에 1개의 지표일 뿐입니다. 혹시 아시나요? 한국은 OECD 국가 중 수면시간이 가장 부족한 나라로 꼽힙니다. 여기 보시면 수면시간도 굉장히 중요한 지표입니다. 소속감도 중요하고 정신건강도 굉장히 중요한 지표입니다. 행복을 체감하는 지표는 다양한데 우리는 지금까지 경제 하나로, 특히 GNP 하나로 측정하도록 강요받아 온 거죠. 탈성장은 그런 강압된 삶, 미래에 저당 잡힌 삶에서 벗어나서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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