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위의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의 노동자



저는 배달노동자들의 노동조합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기후위기의 증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저는 기후위기의 주범자들 혹은 책임자들이라고 하는 것에 더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저는 맥도날드 라이더고요. 맥도날드에서 만들어지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해서 공장식 축산을 하고 소를 대량으로 학살하고 소를 키우기 위해서 산림을 파괴하고 소를 키우는 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감수하면서 만들어진 햄버거를 집집마다 배달하는 기후위기의 주범입니다. 그리고 오토바이에서 발생하는 온갖 매연가스들을 내뿜는 주범입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햄버거는 먹지 않습니다. 작년, 아프리카 돼지열병으로 돼지들을 살처분하는 영상을 보고 나서 돼지랑 소는 먹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기를 배달하지만 고기를 먹지 않는 모순적인 배달원입니다.

사실 인간은 자신이 지구에서 살아가며 하는 많은 행위들이 자신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이런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가 파괴하고 있는 지구의 변화가 다시 노동자들을 어떻게 위험에 빠뜨리는지, 그리고 이 위험에 빠뜨리는 기업들은 어떻게 책임을 회피하는지에 대해서 증언하러 나왔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배달산업은 최근 변화하고 있습니다. 플랫폼 또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처음 등장할 때 ‘굴뚝 없는 공장’, ‘공유경제를 통해서 자원을 재활용하는 새로운 산업’, ‘지구를 지키는 산업’이라며 지지해달라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과연 그런가 한 번 보겠습니다.

사진 Maksym Tymchyk

그들은 공유경제라며 원래 차고에 있던 자동차를 활용해 사회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쓰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새로운 자동차를 쓰지 않아도 되니, 우버는 친환경 기업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버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니까 차가 없던 사람이 우버기사로 일하기 위해 차를 새롭게 사는 모순이 발생했습니다.

배달산업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오토바이를 사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직접 오토바이를 사서 일하는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주말엔 배달 라이더들, 택배업을 자기 자동차로 하는 쿠팡플렉스 노동자들, 전동킥보드 그리고 전기자전거를 타고 있는 배달원들이 도로를 모두 점거하는 상황들이 벌어집니다. 환경을 개선하기는커녕 도로 정체를 더 심화시키는 것이 공유경제라고 이야기했던 새로운 산업들의 민낯인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생활하면서 발생시키는 탄소들을 탄소발자국이라고 하는데요. 우리가 이메일을 보내거나 구글 검색을 하면 디지털 탄소발자국이 계속해서 발생합니다. 넷플릭스도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막대한 서버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서버를 돌리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열이 나기 때문에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해야 되는 역설이 발생합니다.

중요한 문제는 플랫폼 산업은 노동자를 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노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습니다. 공장을 가질 필요가 없이 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에어비앤비 같은 경우는 한 평의 부동산도 소유하지 않고 세계 최대의 임대사업을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이자 노동자인 임대사업자들이 에어비앤비에 자신의 부동산을 올리고 그것을 통해서 사업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기업에 환경오염의 책임을 물었던 것들이 더 이상 어려워지게 됩니다. 우리는 4차 산업혁명, 공유경제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산업을 통해서 발생하는 지구의 위기가 노동자들한테 구체적으로 어떻게 피해를 줄까요? 기상청을 잘 안 믿어요, 라이더들은. 기상청보다 라이더들이 더 민감하게 날씨의 추세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직접 목격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는 미세먼지가 엄청난 화제였어요. 너무 심할 때는 뿌연 안갯 속을 지나가는 느낌으로 배달 일을 했어요. 미세먼지가 ‘나쁨’일 땐 저의 목이 칼칼하고 ‘매우나쁨’일 땐 제 눈이 따가운 것으로 오늘 날씨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측정했습니다. 더러운 얘기지만 샤워할 때 나오는 코딱지의 오염정도에 따라서 그날 공기가 얼마나 안 좋은지를 측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미세먼지, 지구의 위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홀로 책임져야 되는 거예요. “폭염에 야외활동 자제, 미세먼지에 야외활동 자제” 저희가 제일 싫어하는 문자입니다. 이런 문자가 정부가 우리 노동자들한테 제공한 최대 서비스였습니다. 그런데 먹고 살려면 나가야 합니다. 문자 내용을 우리는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 피해를 우리 개인이 다 받아 안게 됩니다. 야근은 2군 발암물질, 미세먼지는 1군 발암물질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발생하는 피해들은 하층 노동자들이 받는데, 그 책임까지도 기업이 아니라 노동자들이 져야 됩니다.

2018년 여름, 도시 아스팔트 위에서는 엄청난 더위에 시달렸습니다. 폭염에 배달하고 돌아온 동료의 너무 어지럽다는 호소를 듣고 저는 폭염수당 100원을 달라는 1인시위를 했습니다. 야외노동자들은 지구 위에서 노동을 합니다. 지구가 위기에 놓이면 노동환경이 계속해서 악화일로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2019년의 계속된 장마에도, 올해 50일이 넘는 장마 속에서도 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울함이 막 몰려오는 겁니다. 빗길 사고들도 계속해서 발생하게 됩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노동조건의 악화, 이에 대한 책임은 노동자가 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폭염에 20대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였어요. 한국사회에서 정규직, 비정규직, 야외 노동자, 이주 야외 노동자가 지구위기에서 가장 큰 피해자가 된 것입니다. 기후위기는 평등하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이 불평등하게 감당하고 있다는 겁니다.

아스팔트 온도는 폭염에는 40도 넘게 올라가고 겨울에는 체감온도가 영하 18도 이하로 내려갑니다. 이것은 냉동실에서 일하는 것과 같거든요. 지구 반대편에서 북극곰의 삶의 터전이 위기를 맞으면 지구 반대편의 아스팔트 위 노동자도 위기를 맞는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폭염수당 ‘100원’을 얘기했는데 100원을 이야기한 이유가 있습니다. 위험수당을 1천원, 1만 원으로 올리면 노동자들은 위험함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하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쿠팡이츠에서 태풍이 오는데 한 건당 1만 5천 원에서 2만 원의 프로모션을 주겠다고 광고를 한 것입니다. 그러면 태풍이 와도 노동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하게 되는 겁니다. 태풍이 오더라도 생산과 소비가 멈추지 않는 사회가 계속 유지되는 겁니다.

2020년 여름 폭우로 도시가 잠겼을 때도 노동자들은 배달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한테 어떤 권한이 없을까요? 작업을 중지할 권한이 없습니다. 왜 우리에게 작업을 중지할 권한이 없을까요?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가장 하층에서 이것을 수행하는 계급이 노동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계속해서 생산하고 빠른 속도로 소비하기 때문에 이에 맞춰 초단위로 일을 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 역시도 사고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플랫폼 노동자들의 사용주들은 중개만 하는 거지 이 산업의 책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로 배달이 늘어나 쓰레기가 늘어나면 이것을 중개하는 배달의 민족이 환경오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한데, 배달의 민족은 단지 음식점과 손님과 라이더를 중개할 뿐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혁신인데, 이것이 지구를 위한 혁신인지 노동자를 위한 혁신인지 아니면 혁신이라고 주장하는 특정 기업을 위한 혁신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플랫폼은 직접 고용과 다르게 공장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숫자의 노동자를 고용하는 한계가 없습니다. 울산공장에서 2만 명, 3만 명 이상 출근시킬 수는 없어요. 그런데 플랫폼은 데이터만 소유하고 있으면 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1억 명이든 10억 명이든 노동력 데이터를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손님도 마찬가지예요. 동네 잘 나가는 음식점들이 손님들의 데이터를 100명, 200명 가지고 있다면, 플랫폼 데이터에서는 60억 인구가 소비자일 수 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생산과 소비가 가능한 겁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의 제한을 받고 야간노동을 금지당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시간대에 반드시 쉬도록 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런데 근로기준법상의 규제를 받지 않는 새로운 노동자가 탄생했기 때문에 365일, 24시간 일할 수 있고 365일 동안 소비하고 생산할 수 있는 세상이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택배노동자가 죽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구도 지킬 수 없습니다. 북극곰을 지키는 노력과 마찬가지로 지금 옆에 있는 근로자들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노력이 없다면 지구도 지킬 수 없습니다. 인간도 지킬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매우 모순적인 위치에 있지만 북극의 북극곰과 아스팔트 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연대만이 지구를 살리고 노동자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고 종국에는 인간과 생명들을 살릴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녹색과 노동이 만나는 연대를 같이 열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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