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것은 “얼굴이 보이는 관계”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20년 동안 계속 재난 쪽 관련 일을 해 왔습니다. 국제구호라 해서 해외에 나가서 학교도 짓고 우물도 굉장히 많이 팠습니다. 지금은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재난구호 단체 직원이고, 한국에 파견 나와서 재난구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필리핀 태풍 때나 2015년 네팔지진 때에는 제가 실무 책임자가 되어서 긴급구호팀을 이끌고 현장에 들어가야 했어요. 사람들을 구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국내에도 재난이 생기면 그 현장에 들어갑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 세월호 참사 때도 현장에 갔었고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 강원도 산불 현장에도 저희 팀이 한 달 동안 가서 구호 활동을 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구호 활동이 직업이니까 당장 내 앞에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고 도움을 주는 일을 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주변에 있는 분이 기후변화 이야기를 했을 때 솔직히 별로 와 닿지 않는 거예요. 요즘도 그렇지만 보통 기후변화 이야기할 때 상징적으로 북극곰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갈 데도 없고 불쌍하지만 나는 사람들 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거죠. 그런데 계속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킬리만자로의 빙하가 다 녹았다는데 저는 그것은 노래방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를 때나 떠오르지 와 닿지는 않습니다. 혹시 저 산 위에 사람이 살면 도움을 드릴 수 있는데 이것은 역시 제 범위와 다른 것입니다. 또 빙하도 녹고 있다는데 저는 빙하를 본 적도 없어 별로 와 닿지 않아요.

그런데 이것은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차드호수인데 크기가 한때 세계에서 여섯 번째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형체가 거의 없어졌는데요. 차드호수가 없어지면서 종교와 인종 문제와도 엮이면서 그로 인한 분쟁 때문에 사망자만 40만 명이 생겼고 250만 명의 난민이 생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이것은 기후변화가 단순히 나와 다른 분야, 환경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명을 직접 위협하는 새로운 기제가 된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이죠. 사실상 결론입니다만 기후변화는 더이상 환경문제가 아니고 제가 보기에는 안보의 문제, 안전의 문제인 것입니다.

아주 가까운 시기에 예를 들면 두 달 전 15호 태풍 파사이가 왔었죠. 다행히 우리나라는 피해갔습니다. 우리나라는 태풍이 일본으로 가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뉴스에도 안 나오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동료들이 일본에 있다 보니까 상황을 계속 보는데 태풍이 부니까 도시가 깜깜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송전선이 다 넘어지고 전신주 2000개가 부서졌거든요. 도쿄 근처 치바 지역이 한 달 간 암흑상태로 지냈던 것입니다. 일본 정부의 발표를 들어 보니까, 송전탑이나 전신주를 세울 때 나름의 기준에 맞게 설치했는데,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순간 강풍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다 넘어지고 도시 전체가 깜깜해진 것이죠. 우리나라도 서울이 한 달간 정전이 되면 어떨까요.

할 일이 많습니다. 일단 개인 혼자는 할 수 없습니다. 병원 생명유지 장치를 단 사람은 전기가 끊기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더 이상 집에서 지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발생하고 그분들을 위해 대피소도 만들어요. 재난이라고 하면 대피소만 생각하는데 정전되면 지역 전체가 대피소가 됩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특별히 힘든 게 없는지 다 확인해야 하는 문제가 있어요.

일본에서는 태풍으로 인한 정전상태가 발생한 후 한 달 지나면서 전기가 복구될 때쯤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옵니다. 태풍 중 가장 강력했고 이것 때문에 일본에서는 1,000만명에 대한 대피권고를하게 됩니다. 실제 태풍이 왔을 때 이틀간 1000mm가 넘는 비가 내린 지역들이 있었습니다. 나가노 지역에서는 제방 가운데가 무너지고 뚫려버리며 전체 시내가 잠겼습니다. 현재까지 일본에 있는 동료들은 이 시간까지 계속 현장에서 구호사업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도시 자체가 잠기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보트를 타고 사람을 찾아내서 구조하고 요양원, 병원에 있는 사람을 옮기고 많은 수의 대피소를 만들고 질병이 돌 수 있기때문에 의사가 상주하며 계속 돌봐야 하는 일들을 계속하게 됩니다.

한국의 사례는 지난 4월 4일에 발생한 강원도 산불의 경우를 들 수 있어요. 기후변화로 인해 눈이 덜 왔고 훨씬 더 건조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강풍을 만나 굉장히 불이 빨리 번졌습니다. 저희는 할머니, 할아버지분들이 대피소로 쓰시는 마을회관들을 다니며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속초중앙시장에 가서 그 물건을 사 드렸습니다. 집 나올 때 슬리퍼가 없어서 신발도 사 드리고 장화도 사 드려야 농사도 지을 수 있으니까 사드리고, 나중에는 헤어드라이기 같은 것, 빨래건조대 같은 것도 필요하시대요. 생활에 필요한 것을 다 갖다 드리고 심지어 신생아가 있는데 아무도 안 챙겨줘서 분유도 갖다 준 거예요.

기후변화는 실제로 리스크를 계속 높이고 있어요. 여기에서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드리겠습니다. 단순히 기후변화, 기후재난이 계속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성격을 보면 많은 분들이 의외로 모르고 있는데 가난하고 취약한 사람들이 더 피해를 봅니다. 똑같이 태풍이 부니까 사람들이 비슷하게 다 다칠 것 같은데 좀 사시는 분들은 덜 다치게 됩니다. 힘든 사람이 더 다치는 것이죠.

카트리나 때 저소득층이 사는 곳일수록 침수가 많고 잘 사는 곳은 피해가 적었습니다. 평등하다는 것은 UN의 통계를 보더라도 고르게 주는 것은 아니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별로 없었는데 작년 같은 경우 온열성 질환, 폭염 때문에 돌아가신 분이 48명이었는데 이 중 75%가 65세 이상 노인이었다고 합니다. 10년 전의 자료를 찾아보더라도 저소득층이 피해가 더 많았고 최근 자료를 보더라도 도시보다 농촌, 저소득층, 고령자분들에게서 훨씬 더 피해가 컸습니다. 똑같은 재난이라 하더라도 취약계층이 더 취약한 것이죠. 그러면 어떻게 할까, 해결 방안을 여기에서 제가 제시할 수 없는데 20년 동안 재난구호 사업을 하다 보니까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개념적인 이야기이기는 한데 재난대응의 세 가지 카테고리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자조. 본인이 스스로 지키는 것입니다. 그다음이 협조입니다. 지인, 가족들이 나를 지켜주고 우리 마을, 이웃이 나를 지켜주는 것을 협조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조가 있습니다. 공조는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입니다. 전화를 하면 소방관이 오고 앰뷸런스가 오는 것이죠.

고베에서 지진이 났을 때 생존자 대상 조사가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살아남으셨어요?” 66.8%가 “스스로 살아남았습니다. 내가 알아서 탈출했어요”.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28.1%, 우리가 기대하는 국가가 와서 구해 준 것은 1.7%밖에 안 됐습니다. 그만큼 시스템이 잘 된 국가라 하더라도 지역 소방 시스템 아시잖아요. 동네 소방서에 소방차 몇 대 없어요. 앰뷸런스 몇 대 없고. 큰 재난이 나면 이미 다 출동하고 나니 할 수 없죠. 구해줄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재난 선진국들은 국가가 할 수 있는 일도 하는데 웬만해서는 당신 스스로, 여러분이 서로 도우며 지키는 것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이런 내용의 훈련, 교육이 훨씬 많고요.

사례로 말씀드리면 저희가 한국에서 계속 시도하고 있는 것인데, 동네에서 체육관 하나 빌려서 동네 주민이 다 모이는 것이죠. 거기에 텐트를 치고 대피소를 만듭니다. 그리고 실제 대피소 생활을 해봅니다. 대피소에서 1박 2일을 보내는데 그 시간에 뭐 하냐면 여러 가지 재난 안전 훈련도 하고 서로 밥을 해 먹기도 하고 같이 어울리며 서로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친해짐으로써 실제 재난이 났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하나의 중요한 방법론이 되는거지요. 그러면 지자체는 이런 것에 호응해서 여러 가지 인프라를 도와주는데 한국식으로 하면 생활 SOC 같은 것입니다. 벤치 뚜껑을 열면 취사도구입니다. 밥을 해 먹을 수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실제 밥해 먹는 연습을 해요. 텐트 치는 연습을 합니다. 맨홀이 보통 동그란데 그 중 네모난 뚜껑이 있는데 가림막 하면 화장실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 같은 경우에는 운동회 자체를 방재운동회로 바꿉니다. 경쟁형으로 하는 게 아니고 불을 꺼야 하니까 서로 줄 서고 물을 나르는 것이죠. 그리고 임시들것을 만드는 것을 알려주고 거기에 인형을 싣고 뛰어다니며 릴레이 경기를 하고요. 이런 것들을 학교에서 운동회든 사회에서의 체육대회든 간에 우리가 같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법이 적용된 방재운동회가 보편화 되는 것이죠.

일본 어느 마을에서는 마을 사람들끼리 마라톤 대회를 해요. 우리 마을이 얼마나 좋은 마을인지 알기 위해 그 코스로 마라톤도 하고, 주민들끼리 마을지도 만들기도 하고, 고령자분들 많으시니까 마을버스를 운영하기도 하고, 서로 만나도록 벼룩시장도 여는데 이것 자체가 재난과 관련이 있습니다. 내용 하나하나는 재난과 관계없을 것 같은데 실제 이런 식으로 공동체가 강해졌을 때 이 사람들이 서로 살리는 확률이 높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한국에서 마을공동체나 협동조합 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활동이 있는데 그분들이 하시는 것은 재난과 관련 없고,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것이 활성화되고 공동체가 많아질수록 우리가 어쨌든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죠.

대단한 솔루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데 다만 20년의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은 구호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까 공동체성이 강한 곳은 굉장히 구호가 잘 돼요. 제가 고향이 서귀포에 있는 제주도 대포마을인데 저는 고향에 가서 제 일을 설명 못합니다. 어머니 혼자 있는데 재난 닥치면 다 모여서 서로 모셔갈 거예요. 서로 피해 복구도 같이해 주시고요. 이미 대응력, 회복력이 있는 것이죠.

강한 공동체 만드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옆집 사람과 얼굴만이라도 아는 것,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 아이는 데려다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 모이신 분들이 같은 생각,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이 자리에 오셨는데 오늘 느끼는 공동체에 대한 감정, 감각이 많이 알려지면 기후재난에 대해 적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봅니다. 이상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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