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워지는 지구에서 농민으로 산다는 것



2020년, 농민으로서의 삶을 돌아보면 굉장히 착잡합니다. 우리는 53일간의 장마를 겪었고, 기록적인 폭우로 읍내의 3분의 1이 잠기는 구례를 봤습니다. 구례에는 여성농민조직이 있고 여성농민회원들이 있는 곳입니다. 과연 우리가 이 기후위기 시대에 농민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기후위기와 관련된 불안은 2018년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생강은 노지에서 재배를 해왔습니다. 노지에서 재배해도 가을에 충분히 수확을 할 수 있는 작물이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폭염으로부터 생강을 보호하기 위해 그늘을 만드는 차광막을 설치하기 시작했습니다. 또 그 해, 저희 동네 할아버지가 밭에서 일하다 폭염으로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가셨어요. 과연 우리 농민들이 밭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까?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2018년의 기온을 한번 봤습니다. 1973년 이후로 2018년의 폭염일수가 가장 많았습니다. 거의 한 달 동안 폭염이 지속됐습니다. 그 지속된 폭염 속에서도 야외에서 일해야 하는 농민들의 삶은 어려울 수밖에 없었죠.

2019년은 지금까지 가장 많은 태풍 수를 기록했습니다. 일곱여 차례의 태풍은 농작물을 모두 뒤엎고 농촌 현장을 휩쓸었습니다. 2019년의 기후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먼 아프리카에도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저는 그해 8월, 짐바브웨를 방문해 짐바브웨 농민과 모잠비크 농민, 말라위 농민을 만났습니다. 그 농민들이 증언한 피해는 너무 심각했습니다. 많은 농경지가 매몰됐고 1,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농토를 잃었습니다. 생존의 현장을 잃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기후문제가 결코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며 일시적인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농업은 기후변화의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고, 농민은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기후위기가 농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가 알고 있는 이웃 농가인 포도 농사를 짓는 한 농민에게 물었습니다. 그 포도 농가는 예년 수확량의 30% 정도밖에 수확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올해 긴 장마로 일조량이 굉장히 부족했고 비로 인해서 포도가 다 터져버리는 열과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70%는 밭에 버려야 될 그런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한 농민의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곶감으로 유명한 상주는 감 농가가 많습니다. 제가 아는 한 감 생산농가는 농사경력 20년 중 올해 생산량이 가장 적었다고 합니다.

저 역시 30년 정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올해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기후위기가 농민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가지 자연재해는 앞으로 점점 더 심각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점점 더 그 빈도가 잦아질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매년 지금까지 기상관측 이래 최악의 폭우, 최악의 더위, 최악의 한파라는 뉴스를 더 자주 듣게 될 것입니다. 이는 작물 생산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작물을 생산하는 자원인 토지의 악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농민들의 탈농, 이농을 가속화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식해야 할 중요한 것은 ‘농민이 사라진다는 것은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사람들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거리를 생산하는 이 생산기반이 파괴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식량위기로 다가올 것입니다. 기후위기의 또 다른 경고는 식량위기입니다.

세계기상기구, IPCC 등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식량위기를 이야기했습니다. 최근 환경부가 한반도에서 지금처럼 이렇게 기온이 상승된다면 벼 생산량이 25%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1%입니다. 79%를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우리나라 쌀 자급율은 80~90%입니다. 쌀을 제외한 나머지 곡물 자급률은 5%밖에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식량위기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 대응의 일환으로 식량위기와 농업시스템 전환을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이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속가능한 식량체계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저는 지속가능한 농업과 지속가능한 식량체계에 대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이 기후위기를 위한 정부의 대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농업과 먹거리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농업과 먹거리 분야가 전 세계에서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4분의 1을 차지한다는 사실입니다. 농업과 먹거리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가 농업에 또다시 피해를 주는 악순환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농업분야의 온실가스 배출을 대폭 줄이는 것이 우리 농민이 사는 길이고, 우리 모두가 안전하고 건강한 식량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아시다시피 공장형 축산, 거대한 산업농업시스템은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합니다. 소농들이 다양한 품종들을 농생태적으로 생산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 있게 봐야 될 것은 땅입니다. 소농들이 생산하는 작물의 뿌리는 깊이 토양으로 들어갑니다. 이 뿌리는 대기 중의 탄소를 흡수해서 토양에 가둬놓는 역할을 합니다. 산업적 농업생산 방식은 이 작물의 뿌리들이 토양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세계식량기구는 산업적 농업이 식량의 30%를 생산하지만 에너지의 70%나 쓴다고 진단했습니다. 우리는 농업생산방식을 전환해야 합니다. 농업생산방식의 전환을 통해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대기 중에 있는 탄소를 토양으로 보내야 합니다.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IPCC는 땅을 살린다면 우리 인류가 배출하는 온실가스 3분의 1을 그 땅이 흡수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농업이 이 토양을 살리는 생산방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위 풍경은 제가 활동하고 있는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 언니네 텃밭 생산자 밭입니다. 언니네 텃밭은 농생태적인 생산을 통해서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는 협동조합입니다. 어떤 생산방식이 기후위기를 완화하고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전환의 주체는 소농이고 우리 여성 농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 농민이 이 기후위기를 완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여성 농민들은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생산방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2020년 농민으로서 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벼농사가 주작목인데요. 벼 재해보험을 들었습니다. 올해 병충해 피해가 심했고 쓰러진 벼가 많았습니다. 저희 밭을 본 손해사정인은 30% 정도의 피해가 있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올해는 고추농사도 지었지만 충분한 고춧가루를 얻지 못해 파란고추를 말려서 가루를 냈습니다. 예전 어르신들은 빨간 고추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엔 파란 고추가루도 먹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이 장화 두 켤레는 제가 7월부터 9월까지 90일 동안 제 남편하고 신었던 장화입니다. 사실 정말 두려운 것은 30%의 벼 피해, 파란 고춧가루, 석 달 신었던 장화가 아닙니다. 농민이 농업을 통해서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그러한 기후위기가 온다는 사실이 두렵습니다. 우리 농민은 농민으로 살기 위해서, 기후위기를 완화하기 위한 노력을 하겠습니다. 물론 그 길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 여성농민의 손길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진은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을 지키고 생산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토종씨앗이, 여성농민의 농생태적인 생산방식이, 훨씬 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회복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시도가 농업에 더 많이 확산될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지지해 주고 지원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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