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



제가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눌 이야기는 기후위기와 교육의 생태적 전환입니다. 저는 교육청에서 미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데요. 미래 교육을 담당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미래교육이 뭐냐구요. 사실 저도 미래교육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미래교육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섣부른 단정보다는 모르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떤 변화의 시작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미래는 “아직 오늘 아직 오지 않은” 이라는 뜻이죠. 사실 교육이라는 것은 아직 오지 않은 일에 대한 준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미래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데요. 교육이 미래적이어야 해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래라는 말을 붙이는 이유는 미래 교육은 본질적으로 현재의 교육에 대한 반성과 전복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미래와 관련해 살펴 볼 자료가 있습니다. 유네스코에서 작년에 ‘2030년의 세계’라는 전 세계적 설문조사를 진행했었는데요. 2030년에 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도전으로 세계 시민들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상실을 꼽았습니다. 우리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로 생태위기가 선정이 된 것이죠.

또 미래 교육을 이야기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스웨덴의 청소년 그레타 툰베리인데요. 사진 속에 기후를 위한 학교 파업이라는 피켓이 보이시죠. 기후위기를 전 세계적인 이슈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는 툰베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래가 없는데 왜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하죠?”

미래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저로써는 굉장히 말문이 막히는 그런 질문이었습니다. 이 화면에 ”미래를 위한 금요일“이라는 문구가 보이실 겁니다. 툰베리가 금요일마다 발걸음을 향한 곳은 학교가 아닌 스웨덴 의회였습니다. 기후위기를 현재의 교육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저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인물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바로 청소년기후행동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대응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이 필요하다.” 작년에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의 홈페이지에 장문의 편지를 썼을 때 제가 보고 밑줄을 쳤었는데요. 교육 시스템의 생태적 전환,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요청한 것은 바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육을 생태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곧 미래 교육이고 그것이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이 뭘까요? 저는 오늘 세 가지 관점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요. ‘지구적으로 사유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기’입니다. 지구적으로 사유한다는 것, 이것은 지구를 집으로 사유한다는 것인데요. 오이코스와 노모스가 경제학의 어원이라고 하더라구요. 경제학이 지구를 일종의 재화로 바라보고 부를 창출 하는 것에 골몰한다면, 생태학은 지구를 생명체의 공동의 집으로 여기고 그 집을 어떻게 가꾸어 나갈지 고민을 하죠. 교육을 경제학의 관점이 아닌 생태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지구적 사유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지역적으로 실천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학습자의 삶의 맥락에서 앎과 함과 삶을 일치시키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 두 개의 원이 보이는데요. 왼쪽은 유네스코에서 나온 17개의 지속가능 발전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가능 발전 교육의 3가지 전략, 즉 이 인지 학습, 사회 정서 학습, 행동 학습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OECD에서 나온 2030 학습 나침반인데요. 그림을 잘 보시면 학생의 자기 주체성과 변혁적 역량을 강조하고 있구요. 오른쪽 끝에 보면 웰빙 2030이라고 나오는데 개인적 차원, 공동체적 차원 그리고 행동적 차원에서의 웰빙을 강조하고있습니다.

왼쪽의 원이 지구적 사유를 위한 학습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다면 오른쪽 원은 지역적 실천의 주체로서의 학생들의 삶을 부각시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가지 원이 지구적 사유와 지역적 실천을 위한 것으로 다소 좀 부족한 점이 있기는 하지만 글로벌 거버넌스에 의한 공식적인 합의라는 점에서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위한 전략으로써 계속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의 두번째 관점은요. 가르침에 대한 성찰과 배움의 확장입니다. 사진의 새싹이 보이시죠. 새싹은 흙으로부터 이렇게 돋아나잖아요.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각이라는 것도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위로 이렇게 떠오릅니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저절로 떠오르는 교육, 이것이 교육의 생태적 전환일텐데요.

과거엔 가르침이라는 것이 교사가 학생들을 덩어리로 보면서 a라는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때 결과물도 모두 a가 나오는 게 중요하죠. 혹시 a가 아니거나 a가 나오더라도 주어진 시간에 맞추지 못하면 낙오가 되는 그런 방식이었습니다. 최근에 이러한 가르침에 대한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는데요. 소위 학생 맞춤식 교육이라는 겁니다. 각 학생에게 맞추어 abc라는 지식을 전달하고, 결과도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기대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로 충분한 것일까요? 이제 가르침은 교사가 학생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소통의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게 또 있는데요. 학생들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도 중요하고 교사들 간의 협력적 의사소통도 병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나 이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닐 겁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업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의 자율과 분권도 필요하고 입시체제의 개혁도 필요할 것이고요. 무엇보다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 관점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가르치다”라는 말은 다양한 의미가 있습니다. 화면에 보시는 것처럼 양육하다, 훈련시키다, 설명하다, 진단하고, 처방한다 등등 이런 것이 오늘날의 가르침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제 가르침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확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촉진하고, 학생의 권한을 부여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생성시키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참여해서 변혁할 수 있는 교수 행위가 되어야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르침이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앎과 삶이 일치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틀을 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제 교육의 생태적 전환 세 번째 관점인데요. 반려종과 실뜨기, 이 말은 세계적인 과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인 도나 해러웨이가 쓰는 표현인데요. 저도 얼마전에 알게된 표현입니다. 여기서 반려종이란 뭘까요? 반려종은 반려동물이 아닙니다. 반려종이란 그동안 인간이 끊임없이 만들고 쓰고 버려왔던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 주던 모든 것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비슷한 말로 복수종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인간만이 존엄한 종이 아니다, 여기 인간이 아닌 존엄한 종이 또 있다, 저는 복수종 의미를 이렇게 이해를 합니다.

따라서 복수종 혹은 반려종이라는 사유는 비인간종을 그저 인간이 사용하기에 좋은가, 먹기에 좋은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로만 구분하던 파괴적이고 탐욕적인 유일종으로서의 인간에서 인간이 의존해왔던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한 인식으로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려종이 되는 세계, 호모 사피엔스에서 공존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심비우스으로의 전환, 즉 생태적 인간의 탄생이 필요한 것이죠.

생태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왼쪽 사진을 한번 보시죠. 미국의 애팔래치아 산맥과, 그 오른쪽 사진은 세상에 태어나서 고작 한 달 동안 엄마 젖을 빨고 단 5개월 동안 좁고 더러운 공간에서 사료만 먹다가 도살장으로 들어가기 전 물을 받아 놓으시고 있는 돼지의 모습입니다. 축산물위생관리법 시행규칙 때문에 돼지는 죽기전 12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다고 해요. 저는 생태적 인간이란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안부를 묻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인간으로 죽어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도와 책임은 미래교육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혹시 실뜨기 좋아하시나요? 실뜨기라는 것은 마치 끝말잇기처럼 상대방의 행동에 응답을 함으로써 이어질 수 있는데요. 교육이라는 것도 실뜨기처럼 나와 당신, 다수자와 소수자,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제 정리를 좀 해보겠습니다. 교육의 생태적 전환을 말씀드렸는데요. 첫 번째로는 지구적 사유를 바탕으로 암과 함과 삶을 일치시키는 노력, 그리고 두번째로는 새싹이 돋아 나듯이 배움도 스스로 잘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 마지막으로 나와 당신,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짓는 것, 이렇게 정리해볼 수 있습니다.

인류학자 아루트로 에스코바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디자인하고 우리의 세계는 다시 우리를 디자인한다.” 저는 이것이 미래 교육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세계와 우리가 결코 다르지 않고, 우리가 우리의 세계를 이미 변화시키고 있으며, 또 변화된 세계가 우리를 다시 배움으로 이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의 증인들에 대해서 제가 소개를 좀 하고자 합니다 사실 저는 이분들의 목소리를 대신 전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는데요. 바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모임입니다. 이 화면에 이 웹자보들이 보이시죠. 전국의 초중등 교사들, 교감, 교장, 장학사, 교수들로 구성된 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전국 교사 모임은 약 1년 전인 작년 12월 8일부터 기후위기 화요공부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공부만 하는 모임은 아니고요.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고, 또 반성하고 계획하고 실천하고 공유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학교와 지역 그리고 세계를 변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도 모임이 있었는데요. 어제까지 총 48번 모임이 진행이 되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이 모임을 저희는 2030년까지 계속해 나갈 생각입니다. 계산해보니 대략 480번의 화요일이 남아있더라고요. 저는 이것을 그렇다 툰베리와 청소년기후행동을 본 받아서 ‘미래를 위한 화요일’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제가 서두에 “잘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것이 미래교육 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말씀 드렸는데요. 왜냐하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때 경청할 수 있고, 경청하는 사람만이 연대할 수 있고, 연대하는 사람만이 전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와 함께 경청하고 연대하고 전환하는 기후위기의 증인이 되어주시겠어요?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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